헤파린은 혈액이 응고되는 것을 막는 작용을 한다. 혈액응고란 지혈의 한 과정으로 섬유소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섬유소는 손상된 혈관 부위에 작용하여 여러 가지 세포를 한데 얽어 묶는 역할을 통해 손상된 혈관에서 혈액이 소실되는 것을 막는다. 이 섬유소는 트롬빈이라는 물질에 의해 섬유소원에서 전환된다. 헤파린은 이 트롬빈을 억제하는 항트롬빈을 활성화하는 물질이다.

 

와파린(Wafarin Sodium)도 항응고제다. 상업명은 쿠마딘 또는 쿠마린이다. 비티만K의 길항제(antagonist)이다. 정맥으로 투여시 즉시 효과를 보는 헤파린과 달리 경구로 복용하고,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투여 후 4-5일이 걸린다.

 

임신 중인 산모가 왼쪽 다리에 부종 및 통증이 있어서 병원에 갔더니 심부정맥혈전증으로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산모를 입원시켜서 헤파린 약물을 정맥주사하는 방식으로 치료(heparinization)를 시작하였다. 이후 의료진은 헤파린 치료와 병행하여 와파린 약물을 경구투여하는 방식으로 치료를 시행하였고, 매일 와파린 3mg, 4mg을 처방하였다. 이후 산모는 퇴원하여 정맥주사 방식의 헤파린 치료를 중단하였고, 의료진으로부터 1일 기준 와파린 4m을 처방받았다. 문제는 그로부터 17일째 산모가 산전진찰을 받는 과정에서 태아에게 뇌출혈이 발생하였고, 의료진은 응급으로 제왕절개술을 통하여 분만을 하였다. 분만 이후 아이는 급성경막하 출혈(Acute subdural hemorrhage), 신생아 저산소성 허혈성뇌손상 진단을 받았고, 경막하 출혈에 의한 우측 강직성 편마비성 뇌성마비 및 뇌연화증으로 진단받고, 우측 팔, 다리 마비 등 영구적인 장애를 입게 되었다.

 

문제는 와파린을 산모에게 처방한 것이 잘못된 처방으로 태아에게 뇌출혈을 유발한 것인가였다.

 

환자측은 의료진이 헤파린을 투여하다가 임부에게 투여가 금기된 약물인 와파린의 경구처방을 한 과실로 태아에게 뇌출혈이 발생하였다고 주장하였고, 병원측은 심부정맥 혈전증의 주요 합병증인 폐색전증이 의심되어 산모에게 적극적인 항응고제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와파린을 처방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산모에게 헤파린을 투여하다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이를 변경하여 태아에 대한 위험성이 큰 약물인 와파린을 경구처방한 과실로 태아에게 급성경막하출혈, 저산소성 허혈성 뇌손상의 발생을 촉진하거나 악화시킨 것으로 우측 강직성 편마비성 뇌성마비 및 뇌연화증에 이르게 된 악결과를 초래한 원인이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임신 중에는 혈액응고인자 ,,이 증가한다. 반면 용해인자인 S단백은 감소한다. 산모는 자궁의 크기가 증가함에 따라 골반내 혈관이 눌려 혈액순환이 저해되고, 혈장량의 증가로 정맥저류가 심해져 정맥혈전 이상이 발생한다. 임신 중 혈전 색전증이 의심되면 우선 하지초음파검사를 시행하고, 초음파검사에서 혈전이 발견되지 않은 경우 도플러검사를 병행한다. 또한 컴퓨터 단층 정맥조영술을 시행할 수 있는데, 이 경우 태아와 모체에 조사되는 방사선에 따른 합병증을 고려해야 한다. 심부정맥 혈전증으로 진단된 환자는 항응고치료를 해야 한다. 항응고제로 와파린 등 비타민K 길항제, 미분획 헤파린, 저용량 헤파린 등이 있다. 미분획 헤파린과 저용량 헤파린은 태반을 통과하지 않기 때문에 임신 중 안전한 약물로 고려되고 있고, 와파린은 임신 외의 기간에 가장 장기간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와파린은 미국 FDA 분류 중 임부 또는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여성에게 금기로 취급되는 X등급에 해당하는 약물이다. 호주 ADEC 분류 중 태아의 기형 또는 비가역적인 손상의 빈도 증가를 일으켰거나 일으킨다고 의심되었거나 일으킬 것으로 생각되는 D등급에 해당하는 약물로 분류되어 있다. 비타민K 길항제인 와파린은 기형유발물질로서 임신의 경우 처방금기 사유에 해당한다. 특히 임신 3분기에 복용하는 경우 태아 두 개 내 출혈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임상의학 분야에 알려져 있다. 헤파린은 의학계에서 태반을 통과하지 않아 임신 중 안전한 약물로 고려되고 있다. 예외적으로 임산부가 인공심장판막, 기왕력 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아닌 한 임신 중 정맥혈전색전증이 새롭게 진단된 경우 미분획 헤파린이나 저용량 헤파린으로 치료적 항응고요법을 시행한다.

 

동일한 항응고약물인 헤파린과 와파린이 산모에게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어떤 산모도 태아에게 뇌출혈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한다면, 절대 와파린을 복용하지 않을 것이 경험칙상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헤파린과 와파린 사이에 태반을 통과하는지 여부에 관한 엄연하 차이점이 있는 의학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이 산모에게 헤파린이 아닌 와파린을 경구로 처방한 것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뭔가에 홀린 것이 분명하지 않을까. 꺼진 불도 다시 볼 일이다.

Posted by 이인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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