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의료전문변호사

수술실 CCTV설치는 하책이고, 의료과실 추정규정 도입이 상책이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법안에 대해 여론조사결과 78.9%가 찬성이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하여 여러 의료단체들은 외국의 입법례가 없고, 환자와 의사간 불신을 조장하며, 전체주의적 사고에 의료인을 범죄자 취급하므로 강력하게 법안 통과를 반대한다. 심지어 세계의사회장 데이비드 바브는 한국의 수술실 CCTV 설치는 수술실을 감시하고 불신을 퍼트리므로 의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윤리행동을 촉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하다가 수술실에 CCTV까지 설치해야 하는 불신 사회가 되었는가.

외국에서 공부를 안해서 잘 모르겠지만, 독일의 경우를 보자. 독일 민법에는 진료계약이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고, 그 내용 중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의료인이 충분히 지배할 수 있었던 일반적인 진료위험이 환자의 생명, 신체 또는 건강의 침해를 일으켜서 그 위험이 현실화된 경우에는 의료인의 과오는 추정된다.”(독일 민법 제630조의 h 1)

 

의료인이 진료과정에서 환자의 생명, 신체의 침해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 지배가 가능함에도 이를 지배하지 못해 그 위험(사망이나 신체상해)이 현실화 된 경우 의료인의 과실이 추정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판례나 학설을 기초로 하면, 의료진이 악결과에 대한 예견가능성과 회피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견하지 못하고, 회피하지 못해 악결과가 발생하였다면 의료과실을 추정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어떻게 민법에 이러한 의료과실 추정조항이 입법화되었는지 자세한 연혁을 알 수는 없지만, 이것이 의료사고를 처리하는 선진국의 진면목이라 생각한다. 독일에서 수술실 CCTV를 설치하자는 주장이나 입법이 없는 이유는 위와 같은 민법조항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의료과실이 추정된다는 것은 언제든지 번복이 가능하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수술경과를 잘 알 수가 있고, 수술과정에서 발생한 출혈이나 신경손상이 수술상 과실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불가항력인지 누구보다 정확하게 잘 알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수술 부위 유착이나 기형 등이 있는 경우 이에 대한 기록이나 영상, 사진을 통해 얼마든지 불가항력적인 부분을 주장, 입증할 수가 있다. 이러한 경우 재판과정에서 충분히 과실 추정은 번복될 것이다.

 

의료진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과실을 주장, 입증해야 하는 것이 불법행위 책임 인정을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식물인간, 중증 장해를 입은 상황에서 환자나 보호자가 해당 의무기록을 열람 및 복사하고(실제 환자측은 의무기록의 종류에 어떤 것이 있고, 어떤 경위로 의무기록이 작성되었는지, 중요한 의무기록이 무엇인지 모름), 번역 및 분석해서(대부분 의무기록이 영어로 기재되어 있거나 약어로 기재되어 있어서 제대로 알수가 없음), 의료전문변호사를 찾아서 상담하고(누구를 찾아가야 하는지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소송과정은 신체감정, 진료기록감정 절차에서 2-3년이 소요되고 매우 지난한 과정이 예정되어 있음)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도리어 의료과실을 추정하고, 의료진이 불가항력적임을 주장, 입증하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사회적 비용이 적게 들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길이라 생각한다.(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하고 선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다.)

 

의료소송을 대리하다보면, 수술실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한 주장, 입증을 위해서 정말 수술실 CCTV설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술기록이 없거나 부정확하고, 악결과 발생원인에 대한 설명도 없기 때문에 도저히 환자측이 수술경과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록도 안하고, 설명도 안한 상태에서 비겁하게 입증책임 뒤에 숨어서 환자측의 청구가 기각될 것을 기다리고 있다. 의사로부터 사과를 받아야 하는데, 사과는커녕 입증책임 뒤에 숨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의사를 보니, 그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환자측은 궁여지책으로 수술실 CCTV설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권대희 사건의 경우는 수술실 영상으로 인해 실체적 진실이 드러난 매우 드문 case에 불과하다.

 

수술실 CCTV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환자측이든 의료인측이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또한 수술실 의료과실을 100% 입증해주지도 못한다. 설치 및 관리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문조사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의료과실 입증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지 입증방법이나 수단을 강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성추행이나 대리수술의 경우 의사면허취소나 영구적 박탈 등 제도적 장치마련으로 통제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수술실 CCTV설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자와 의사간에 신뢰 회복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이 국민적 지지를 받는 것은 이제 의료사고 발생시 의료인이 입증책임 뒤에 숨어서 재판결과가 나올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정당하지 않고, 우리도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에 온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실제 필자는 2005SBS 시시비비에 출연하여, 입증책임 전환을 찬성하는 쪽으로 토론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다.) 수술실 CCTV설치 법안은 의료계가 그동안 수술실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한 입증책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우리 민법에 독일과 같이 진료계약과 의료과실 추정조항을 도입하면 좋겠다. 독일은 무려 8년전부터 이미 시행하고 있다. 법 제정 이후 실무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하고, 기회가 되면 독일에 가서 공부를 해 보면 좋겠다. 독일식 민법 규정 도입이 아니라면, 교통사고와 같이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해서, 최소한 수술실, 중환자실, 시술실 등 밀실성이 전제된 곳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한하여, 수술기록 등 진료기록이 부실하고, 의료진의 설명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규정을 마련하고, 보험가입이나 합의가 된 경우에 한해서 의료진에게 형사책임특례를 도입하는 법안을 마련하면 좋겠다. 그리하면 수술실 CCTV설치 문제를 해결하고, 환자와 의사 상호간에 신뢰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